여행 이야기

베트남-캄보디아 여행 4일차 오후

싱글이아빠 2015. 3. 1. 23:49

 

이제 톡톡이를 타고 앙코르톰으로 이동합니다.

신혼여행지인 태국의 거리에서도 느꼈던거지만 주위의 야자수를 보면 흥분되고 들뜨기까지 합니다

 

 

앙코르 톰은 앙코르왕국의 마지막 수도로 당시 왕궁과 주요사원, 사람들의 거주지가 있던 곳입니다.

자야바르만 7세이전부터 앙코르 왕국의 주요 도시였던 곳으로 자야7세는 1186년부터 이곳에 라테라이트 성벽과 해자를 축성하고 테라스를 정비함으로써

완벽한 성벽 도시형태로 완성하였습니다

현재는 거의 허물어졌지만 원래 이곳의 성벽은 7~8미터에 이르는 높고 견고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해자의 폭과 수위를 조절하는 장치를 만들어 적들의 침입에 대비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자야7세는 왜 이런 철통같은 요새 도시를 만들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외적의 침략을 막고 지방 세력의 반란에 대비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철벽같은 방어시설이 존재했기에 앙코르톰은 안전과 번영 속에 백만 인구를 거느린 12세기 세계 최대의 도시로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앙코르네비게이션 - 그리고 책 출판> 인용

 

 

여기는 따 프롬 사원입니다. 12세기말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비는 마음에 바이온양식으로 지은 불교사원으로

사원 건립 200년 후 타이족과의 전쟁에서 진 크메르인들은 강제 이주나 죽임을 당해 버려지고 잊혀진 도시가 되었다는군요

그러나 태국인들이 이 곳을 통치하기 위해 도시를 만들고자 했는데 거리가 너무 멀고 내부사정으로 수도 만들기를 포기하고 철수했다고 합니다

이 사원의 입구에 들어서면  27미터의 거대한 탑이 있는데  탑 꼭대기에는 사면상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 사면상은 자야7세 당시의 건축물이며 특히 고푸라(사원 입구에 세운 피라미드형의 큰 탑)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입니다

 

건축물에 얼굴을 새긴 것도 톡특하지만 하나도 아닌 네면을 얼굴로 했다는 게 특이합니다

 

 

 

 

자야바르만7세때 크메르제국이 제일 전성기였는데 자야7세는 왕족 답지 않게 서민을 위한 복지에 관심이 많아 가진 기득권 층의 불만을 샀다고 하네요

 

입구에 들어서자 오른쪽에 따쁘롬사원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있는데 세계 최대 관광객이 다녀가는 우리나라의 언어로 소개된 안내판이 없어

한인들이 건의하자 캄보디아 정부에서 기존 안내판 뒤에 우리말로 소개를 해놨다네요 참네 누가 뒤에 가서 본다고

 

입구에서 걸어오다가 찡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억말리 타국에서 우리 민족의 애환이 담긴 <아리랑>이 들리는게 아닌가요. 순간 가슴이 뭉클함이 느껴졌습니다.

이들을 전쟁시 지뢰를 제거하다 불구가 사람들로 구성된 단체의 악공들로써 정부에서 이들에게 이곳에서 연주하며 기부를 받을 수 있도록 허락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가이드이 설명을 듣고 우리는 가족당 1$씩 기부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우리나라 아리랑만 연주하는게 아니고 중국인들이 지나가면 중국음악은 연주하더군요

안쓰러운 맘도 들었지만 처음 아리랑을 듣고 받았던 감동이 다소 수그러들고 말았답니다

 

 

 

 

 

따프롬 입구로 부터 양쪽에 죽 늘어선 이앵나무(일명 기름나무)

이 나무의 액체는 휘발성이 강해 흐르는 액체를 받아 등불도 썼다고 합니다

가이드가 직접 액체에 불을 붙이니 불이 붙어요

 

 

 

가구나 악기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열대나무로 도장으로 많이 사용된다는 나무입니다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영화 "톰레이더"의 촬영지로 유명한 이 사원은 커가는 나무들에게 의해 심하게 훼손되어 있고 프랑스의 고고학자들이 자연의 파괴력이

어떻게 인간의 유적을 파괴하는 지 알려주기 위해 통행로만 제외하고 전혀 복구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군데군데 무너져 내린 돌들이 쌓여진 채로 있으며 이 곳은 앙코르와트와는 달리 거의 복원이 되지 않고 방치되고 있습니다.

복원이 너무나 잘  정비된 것보다는 오히려 더 정감이 갔습니다

 

 

 

 

 

 석조 건물 사이를 스펑나무의 뿌리가 곳곳에 비집고  사원을 붕괴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뿌리와 뒤엉켜 신비한 광경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자연앞에 인간의 문명이 얼마나 덧없고 부잘없는지를 느끼게 해주는 사원입니다

 

사원의 중앙건물로 진입하는 도로 양옆에 나가상이 뒷 건물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이 연출됩니다

 

 

 

왼편이 사원 복원이전의 사진이고 오른편이 복원 후 사진이네요

 

 

 

앙코르와트와는 달리 나무들에 의해 지배당한지 오래 되서 그런지 건물에는 이끼들로 푸른 빛이 바래고 있습니다

 

거대한 괴물이 건물을 넘어오는 듯 담벼락은 속수무책으로 점령 당한 채 유지됩니다

계속해서 나무의 성장을 지속하다가 이제는 건물이 무너지는 걸 막기위해 나무에 성장 억제제를 주사해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했다는군요

 

 

 

 

 

 

건물의 푸른 빛이 마치 영험한 느낌으로 컬러풀한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시원스럽기도 하구요

 

 

 

 

건물들이 버려진 동안 무화과나 보리수, 즉 스펑나무들이 거대한 뿌리를 뻗어 지붕처럼 사원을 뒤덮고 있으며 담벽과 테라스의 틈 사이에 뿌리가 파고들어

건물이 벌어지거나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랍니다

 

 

 

 

 이끼로 건물들이 초록빛깔을 띠고 있는데 훨씬 옛 유적의 느낌이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 옛날 수십 km를 옮겨서 만들었다는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네요

 

 

사원에 왠 강아지? 다소 피곤하고 수척해 보이네요

 

담장을 뒤덥은 나무의 뿌리는 언뜻보면 나무의 몸통부분 같아 보입니다.

이렇게 뿌리가 땅위에서도 잘 견딜 수 있었던 건 이만큼 이 지역이 습했기 때문이랍니다

 

 

 

 

 

 

자아바르만7세가 어머니를 위해 특별히 만든 방으로 보석이 무려 4천 4백여개나 있었다고 하니 엄청 화려했겠죠

현재 이 보석들은 태국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답니다

 

 

저주받아 악령으로 변할 거 같은 나무입니다.  나무의 줄기와 뿌리가 도무지 구분이 되질 않습니다

 

 

 

 

 

 

 

 

 

역시 머리가 없네요 수많은 전쟁을 겪어 문화재를 소실한 우리나라와 마찮가지로 안타깝습니다

 

 

유적이라는게 옛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 것도 좋겠지만 이렇게 망가친 채로 보존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거대한 나무가 사원을 삼켰다고 표현 해야겠지요

 

 

 

 

 

효성이 지극한 자야바르만7세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며 통곡하며 울었다는 통곡의 방입니다

왕이 아무때나 울 수 없어 이런 방을 만들어 석달 열흘을 통곡하며 울었하고 하는데

이 방에서는 말소리나 손뼉소리는 울리지 않지만 가슴을 치면 텅텅 크게 울립니다

텅텅 소리가 유난히 크게 나는 사람은 한이 많은 사람 즉 불효자라네요 가이드님이 말이죠 ㅎ ㅎ

 

 

통곡의 방에 대한 가이드 설명

 

가운데 손모아 앉아있는 형상에 얼굴이 뱀머리 3개의 나가상 같아보이네요. 그리고 벽에 곳곳에 뱀의 얼굴이 돋아 나옵니다

 

 

캄보디아의 신전이나 탑은 이렇게  붉은 색을 띠는 라테라이트 벽돌로 되어 있습니다 모양으로 보명 제주도 현무암하고 비슷하게 보이죠

 수분이 있는 땅 속에서는 부드럽지만 공기 중에 놓으면 철 성분 때문에 매우 단단한 건축재료가 된답니다

앙코르와트도 이런 라테라이트 벽돌을 기본으로 하고 외벽에 돌들을 쌓아 놓은 것이구요

 

 

 

 

 

처음 자랄때는 아주 조그만 잔나무에 불과했을텐데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는 건물의 존립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따프롬 사원을 죽 외부에서만 둘러보다 내부의 통로같은 곳을 지나면서 아주 특이한 것을 볼 수있었는데 나무 사이로 불상 얼굴이  보이는 겁니다.

얼핏 봐서는 잘 안보이는데 확인하는 순간 감탄사가 나옵니다. 한편으로 참 답답하겠다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사람인양 말이죠

 

거대한 나무 뿌리에 갇혀버린 압사라

 

 

작은 부분까지 섬세하고 세밀하게 표현되었으며 매우 입체적으로 조각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나무는 큰 이무기가 담을 넘어가는 듯한 모습처럼 보여닙니다. 그런 상상을 하니 징그럽다는 생각도 들구요

 

 

 

 

 

인터넷 사진들 보면 관광객이 그리 많지 않던데 우리가 올 땐 마치 시장통 같이 혼잡스러워 사진 찍는 것도 불편할 정도입니다

하긴 우리 일행만 가이드 포함 33명이니

 

 

 

 

 

 

이제는 따프롬을 나가야 할 시간 아쉬움에 셀카샷을 날려봅니다. 더위에 얼굴을 겁게 타고 어설픈 웃음이 자연스럽지 않네요 ㅠ

 

 

 

 

 

가이드는 이후 일정을 바닥에 그려주며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툭툭이를 타고 코끼리테라스를 보려 갑니다. 다른 툭툭이와 혼동이 될 수 있어 툭툭이에 철수1, 철수2, 철수3 순으로  넘버가 매겨져 있는데

처음 타고 왔던 툭툭이를 타고 갑니다

 

 

툭툭이를 타고 오는 도중에도 복원 중인 유적들이 군데군데 보였는데 캄보디아는 아직도 많은 유적들이 이렇게 복원 중이어서 앞으로 더 기대가 된다고 하네요

이 유적은 인터넷 검색으로 확인한 바 <따 케오 사원>이군요

안내판에는 11세기초 자이야바르만 때 건설되었다고 적혀 있는데 이곳의 유래는 정확히 밝혀진게 없다는군요 많은 학자들은

자이야바르만 5세때 건설을 시작하여 자야비라바르만을 거쳐 수리야바르만 1세때까지 지속되었으나 결국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남문은 앙코르톰 유적군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총 5개의 문 중 해자도 가장 아름답고 다리 나간의 석상도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남쪽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좌측 난간엔 머리가 7개 달린 뱀인 나가의 몸통을 잡고 당기는 착한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모습은 힌두교의 천지창조설을 형상화 한 것이라고 하는군요. 맞은 편 우측은 투구를 쓴 무서운 얼굴의 조각상이 보이는데 이는 악신들입니다.

다리 좌우에 선신, 악신, 54개씩 108개가 있어 힌두교의 천지창조 신화와 불교의 108 번뇌를 연상하며

앙코르제국의 힌두교와 불교를 융합한 통치 이념을 볼 수 있는 조형물이 되겠습니다

 

 

코끼리는 태국에서 신혼여행 때 타 보았으나 타봤다는 거뿐 그리 인상적이진 않았습니다

 

잠시 우리는 화장실도 다녀오구요

 

 

 

여기에서 바이욘사원까지 구경하면서  천천히 걸어갈 사람과 톡톡이를 타고 갈 사람이 나뉘었는데 우리는 힘들더라도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여행하려 왔으니 많은 것을 보고 가야하지 않겠어요

 

 

앙코르톰 유적군의 코끼리테라스는 12세기 후반 자이야바르만 7세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온 군사들을 맞이하고자 만든 대규모 테라스입니다

단상 밑에 코끼리들이 부조되어 있고 광장에선 군대 사열, 군사훈련, 외국 사신 영접 등이 있었다고 하네요

 

 

 

 

앙코르 유적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사람의 상상력이라고 하는 것이 무궁무진함을 느낍니다.

아니 이거 상상이 아니라 실제 당시 코끼리를 데리고 사열하는 모습을 표현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너른 광장를 배경으로 울 가족 사진을 현지가이드 철수(한국식 이름입니다)에게 부탁해 봅니다. 그러자 그는 ~~~

 

우리에게 공중부양을 제안했고 우리는 기꺼이 응했으며 이렇게 이번 여행에서 제일 멋진 가족사진을 얻었습니다

 

 

앙코르유적들은 대체로 그을린 것처럼 그런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불난 후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말이죠

 

 

 

나가 나간의 사열대를 떠받치고 있는 가루다들. 가끔씩 사자와 가루다가 번갈아 조각되어 있습니다

가루다는 뱀신인 나가와는 천적관계입니다

 

 

 

 

테라스 맞은편에는 <천옥>의 12개 탑이 있는데 원의 사신 주달관의 기록의 따르면 쟁송을 다루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분쟁이 생기면 당사자들을 저 옥탑에 며칠을 가두고 쓰러지거나 부스럼이 나는 쪽이 죄인이 된다는 것인데

사람이 죄를 가리지 않고 하늘이 죄를 가린다 하여 <천옥>이라 일컫는다 합니다 

범죄 혐의자를 잡아 기름이 끓는 냄비에 손을 넣게하여 아무렇지 않으면 무죄, 벗겨지거나 문드러지면 죄인이 되는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 없는 판결이지만 그 당시 크메르인들은 그렇게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건너편으로 건너가 저기도 함 둘러보고 싶었지만 먼저간 일행들이 바이욘사원에서 기다리고 있었기에 멀리서 보기만 했습니다

 

 

 

사자와 가루다들 어쩌면 벌받고 있는 모습을 수도. 손들어 ㅋ ㅋ

 

 

코끼리의 코가 나의 목을 휘감을 것 같은 느낌

 

 

 

 

코끼리가 강아지의 목을 잡아 들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셀카를 찍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의무감. 그러나 찍고난 후 느끼는 생각 "왜 나는 안되는 걸까"

 

코끼리테라스를 중심으로 좌우 150미터씩 조각들이 담의 형태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바닥을 보면 황갈색이죠. 캄보디아는 벌건 황토흙으로 구성되어 비포장길은 이렇게 벌겄습니다

 

지나가면서는 여기가 어딘 지 몰랐는데요 여기가 바푸온사원이더라구요

바푸온사원을 만든 왕은 우다야디티야바르만2세로 11세기에 잠시 앙코르를 통일했던 수리야바르만 15세의 아들입니다.

바푸온사원은 오랜 시간 동안 관심을 끌지 못하던 유적이었는데 복원공사를 진행되면서 2011년 10월 드디어 내부가 공개되어

 앙코르톰의 인기 유적을 부상 중에 있으며 복원이 끝나면 앙코르와트를 능가할 만큼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네요

 

다리의 길이가 무려 200미터로 앙코르의 다리 중 제일 깁니다. 이 다리는 건축 당시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후대에 건축되었는데요

난간이 없어 독특한 느낌을 주는데 원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소실되었다고 하는군요

여기도 시간상 멀리서만 바라보았습니다 쩝~

 

바이욘사원은 앙코르톰 지역의 중앙에 있으며 12세기 자이야바르만 7세가 참파족에 대한 전승을 기념하여 세워 부처에 봉헌한 유일한 대승불교 사원이라는군요

그러나 후대에 힌두교가 유입되어 사원전체가 힌두교화 되었으며 사원탑에 있는 200여개의 거대한 얼굴상들은 자이야바르만 7세로 추측하지만

관세음보살의 얼굴이라는 설도 있답니다

 

이 곳에는 원래 54개의 사면상이 있어야 하지만 잘못된 복원 작업 때문에 지금은 37개밖에 남아 있지 않다네요.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전부 해체하고 다시 지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고 합니다

정말 그리스나 이집트와 비교해서도 뒤지지 않는 예술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 일정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바이욘 앞에서 찍사라고 사진만 찍고 갈수는 없었습니다

 

 

 

 

 

 

 

 

부처님이 7일간 고행할때 뱀이 주위에서 지키며 비를 피하도록 했줬다는 얘기가 있는데 바로 그때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래와 뒤에 뱀이 보이죠

 

 

다리를 쫙 벌리고 춤추는 모습에서 흥겨움이 느껴집니다

벽에 조각들이 있었다는군요. 바로 앞으로만 진행하였고 따라가도 보니 옆은 볼 틈이 없었습니다 아쉽게도

 

 

 

 

도대체 이 먼곳까지 어떻게 돌들을 그 옛날에 날랐을까요 참으로 신비합니다

 

 

 

 

 

 

 

 

 

크메르의 미소로 불리우는 조각품

어찌보면 무섭고 다시 보면 친근감이 드는 얼굴상이다

 

워낙 바로 이 장소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아 서둘러 찍었습니다. 바이욘사원에 있는 미소상 중에 제일 조각이 선명하고 표정이 밝은 조각상입니다

 근데 이 포즈는 누가 알려줬을까요

모처럼 사람이 없어 자유롭게 한 컷 그리고 사람들 또 몰려듭니다

 

 

 

 

 

 

 

 

 

우리는 바이욘사원을 나가고 있습니다

 

 

 

바이욘사원의 뒷 부분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들어가 뒤로 나왔죠. 근데 얼핏 봐서는 꼭 같아 보입니다

 

다시 툭툭이를 타고 이동합니다. 역시 처음 탓던 그 툭툭이를 찾아 타고 말이죠

 

 

 

 

이렇게 앙코르유적 관광이 끝나고 저녁 식사를 하러 갑니다. 툭툭이를 타고 가는 동안 앙코르와트 주변의 넓은 해자를 볼 수 있습니다

 

 

 

 

 

 

 

 

 

 

 

시내를 통과해서 식당에 가는데 특이한 장면이 보여 급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토바이에 돼지 여러마리를 통채로 태우고 가는데 움직임이 없는 걸 보니 죽은 모양입니다

 

 

캄보디아의 전통무용인 압사라 춤을 보면서 부페식사를 합니다

 

 

부페식사를 하면서  울 따님의 핸드폰이 없어져 순간 난리가 났습니다. 캄보디아는 못사는 나라이고 이 핸드폰 중고가격은 이들에게 매우 짭짤한 수입거리여서

 거의 찾을 수가 없다고 하는데 우리가 없어졌으니 말이죠. 가이드에도 얘기해보고 딸을 혼내다 보니 핸드폰이  제 주머니에 있지 뭡니까글시.

딸이 음식 뜨는게 불편에 나한테 맡겼던 것을 나도, 울 딸도 순간 당황해서 잊었던거죠. 암튼 찾아서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