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날씨가 포근해 추운 겨울 웅크리던 어깨를 펴고 기차여행을 떠나 봅니다 목적지는 남원 광한루 수지가 기차를 타고 싶다고
강력히 제안했고 바쁜 마나님이 시간을 내서 이루어졌습니다.
남원은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제가 근무했던 곳으로 추억이 새록새록 묻어있는 곳이어서 떠나기 전부터 설레기 시작합니다
전주역 대합실
대합실 앞에서 시민들이 남겨놓은 메모들이 붙어 있넹 어떤 내용들일까요 핸폰이 없던 시절에는 시간은 없고 중요하고 급한 사항을 전달하고 싶을 땐
유용한 수단이었겠지만 지금은 그리 실용적이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펜으로 직접 쓴 글씨는 타자로 찍어낸 활자보다 훨씬 정감이 있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겠죠
전주역앞 광장 부채모양의 조경
몇년 전 전주역 광장을 개보수했는데 황량한 광장을 그래도 아기자기 꾸며놓은 노력이 엿보이긴 합니다 그러나 아직 아쉬움이 남습니다
현 전주역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인 1981년 5월 현 전주시청 자리인 서노송동에서 이곳 우아동으로 이전해 왔었죠
기와지붕에 훨씬 으리으리하게 지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지금은 기와지붕이 한국적인 이미지가 강한 전주에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지금 12시반 여수행 무궁화 열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드디어 열차가 진입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이정도 거리에서 경적을 함 울리고 왔던 것 같은데 지금은 기억이 안나네요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ㅠ
기타를 타면서 궁금했던 건 과거에는 홍익회에서 카트를 가지고 열차를 돌아다니며 과자나 음료를 팔았었죠 이때 제일 인기있었던건 3개짜리 삶은 달걀
햐~~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홍익회는 역사속으로 사라진지 오래고 이젠 매점이 있군요
흡사 카페같죠 사실 이렇게 바뀐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각 객실에서 먹다보면 자리도 비좁은데 냄새도 나고 주변에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요
노래방 시설도 있구요 간단한 게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용하는 사람은 그다지 없어 보이네요
이 장면을 보면서 영화 <설국열차>가 생각이 났어요 송강호가 여자 국무총리를 인질로 데리고 맨 앞 객실로 이동하면서 보여주는 객실의 모습 말이죠
객실의 모습입니다. 이런 것도 사진을 찍나 좀 쑥스럽기도 했지만 창피는 순간이고 이익은 영원하므로 찍어보기로 했습니다
새벽기차를 타고 임실로 출퇴근했던 마눌님은 이번 기차여행에 대한 훈수를 합니다
기차여행의 꿈을 이룬 최수지양
요즘 나의 사진을 볼 때마다 얼굴에서 죽은 깨가 너무 많고 살찐 모습이 너무 둔해 보인다는 느낌이다. 과거의 싱그러움은 나이란 놈이 가져갔을까
기분 좋을 때만 착 달라붙는 울 따님 아주 기분이 업돼있죠
드디어 우리의 목적지 남원에 도착했네요
남원역은 제가 2000년에서 2003년 근무할 적만해도 여기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동충동에 위치했었다가 2004년 8월 여기 신정동으로 이전 했죠
전에 왔던 남원역은 아니지만 크고 한적하니 좋군요. 동충동에 남원역이 있을 때는 바로 회사가 옆에 있었는데 거의 이용하진 않았고 버스를 이용했죠
전주역에서 집까지 거리가 멀어 버스가 편했기 때문입니다
주말이었는데 겨울이라 그런지 이용객이 많지 않았습니다
중국 자금성의 금색 기와지붕을 보면서 참 화려하고 기억에 남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나라에도 그런 기와가 있는 건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원역의 지붕은 일반 지붕과 달리 색깔이 카키색이었고 모양도 달라 보이네요
남원의 주요 관광지도 입니다 현위치에서 우리는 광한루원을 가는데 걸어 갈건지 버스를 탈건지를 상의했는데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남원 여행에서 허락된 시간은 6시간 정도로 갈때는 버스로 가고 올때 시간을 봐서 걸어 오기로 했습니다
집집마다 자가용이 흔한 요즘 버스타는 기회가 흔치 않습니다.
학교 다닐 적 매일 탔던 시내버스 더욱이 시골? (전주에 비하면 시골이겠죠) 버스를 타니 기분이 다르더군요 버스요금은 얼마였더라????
광한루 남쪽 입구에 왔습니다.
광한루는 전국적으로 너무 유명한 곳이긴 하나 요금이 좀 비싸보이긴 합니다. 공원으로 시민들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무료로 하면 좋겠지만
지차체의 현실적인 재정을 감안한다고 해도 천원이상은 좀 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처:다음 백과사전 화면캡쳐>
여기가 광한루입니다 앞이나 옆에서 보다가 뒤에서 보니 처음엔 다른 건물인줄 알았습니다
여기가 오작교 아치형의 다리가 부드럽고 섬세한 느낌을 줍니다. 춘향이와 이도령이 다리 한 가운데서 만나 거닐 던 모습이 아늘거리네요
오늘은 춘향이와 이도령 대신 내와 울 마눌림이 간다~~~~
작은 연못과 정자 한폭의 그림과 같고 옛날 이야기라면 신선이 바둑이라도 둘 만한 곳이죠
여기가 광한루의 메인 장소입니다
연못 한쪽에 노가 없는 빈 배가 얼어붙은 물위에 덩그런히 놓여 있는데
물이 하얗게 얼어있는 모습과 이쁘고 홀로 있는 배도 나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연못 건너편엔 과거 공원에 의레히 있었던 사진사 아저씨 디지털 사진이전에 가끔씩 찍곤 했었죠
사진 찍고 나서 2~3일 후에 사진이 집으로 배달되었지 아마
나이가 들면서 같이 사진도 안찍으려는 비싼 마눌님과 한 컷 찍어봅니다. 근데 제 웃는 모습이 영 아저씨스럽네요
그저 싱싱한 줄 알았는데 사진 찍어보면 세월이 느껴지는게 서글픕니다
죽고 못사는 두 모녀
완월정
계관이라는 달나라 궁궐에는 아름다운 선녀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완월정은 달나라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라는군요
뒷쪽에서 본 완월정
얼음을 본 아이의 본 본능 우리가 올라가면 얼음이 과연 깨질까 안 깨질까
현대판 춘향이 납신다 ~~
변사또의 수청의 거부하다 투옥된 울 따님
월매(춘향이 엄마)의 수청을 거부하다 투옥된 수지아빠
그러나 절실히 후회하는 모습이 영력함 ㅋ ㅋ
보는 눈이 많아 마지못해 변사또의 수청을 거부했지만 이내 변심하고 개인적 영달을 취하는 수지엄마
변심한 댓가를 치루는 수지엄마 그래도 잘했다는 저 뻔뻔함은 어찌 해야할지 ㅋ ㅋ ㅋ
내 블로그니까 내 맘대로 전개하는 거지 뭐
그러나 이내 처지가 뒤바뀌어 처절한 복수가 시작되고
인생은 다 그런거
이제는 감정과 체중을 싣고 있습니다
춘향이 엄마인 월매네 집으로 가봅니다
월매네 집에 방자가 있네요 이도령하고 있어야 하는디 ㅋ ㅋ
여기서도 장사의 상술이 보입니다. 한마디로 항아리 안으로 돈 많이 던지라는 얘기 ㅋ ㅋ
선수끼리 너무 해
마네킹이지만 곱다~~
월매집의 뒷뜰입니다
월매가 장원급제를 기원하며 빌었다는 곳
근데 왜 기원금 함이 있을까 절도 아닌데 뭐야 이거
옛날 부억에 밥짓던 생각이 나는군요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방도 따뜻해지지요
지금은 한옥마을이나 정읍 김참봉이나 가야 체험할 수 있겠지만
월매도 곱고 손님도 고을시고
나 너무 여자를 좋아하나
자개 농은 20년전까지만해도 우리 주변이 더러 있었는데 지금은 이런 곳에서나 보게 됩니다
제 대학친구가 25년전 대학1학년때 동해안 배낭여행을 가서 돈 한푼 없다고 계좌적어 나한테 엽서 보냈는데
아쉽군요 지금처럼 블로그라도 있었다면 사진찍어서 저장해두면 재밌을거 같은데
친구의 엽서를 본 나는 고민 끝에 돈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돈도 없었거니와 그때 당시만 해도 무전여행이 유행이었는지라
젊은니까 어떻게든 할거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얘기들어보니 절을 가서는 이렇게 동전 던져놓은 곳에 사람들 눈치 안보고 기냥 바지 올리고 들어가
동전을 쓸어왔다는 슬픈이야기를 들여주더군요 ㅎ ㅎ
여전히 월매네 집입니다 그리고 박제가 아닙니다
재래식 뒷간입니다 저 끝에 11자로 돌 2개 보이죠 거기에 양다리 놓고 큰 일 보는 겁니다
보통 뒤에 왕겨 같은게 있음 편하죠 일보고 왕겨로 덥고 앞으로 보내면 되니까요 이런 걸 속칭 골프식재래 화장실이라 부르죠
광한루와 오작교, 연못과 왕버느나무가 한 컷에 들어옵니다
불혹의 나이가 넘으심에도 여전히 변치않는 미소를 뽐내시는 울 마눌님
광한루와 오작교를 배경으로 하여 빈 배 놓인 모습도 새롭네요
사진 제목을 하나 붙인다면 뭐가 좋을까 <외로움>이 어떨까 하는데 춘향이 이도령도 없구
무려 430년이 넘은 왕버들나무입니다. 오작교 축조때 같이 심어진 것으로 추정된다는군요
왕버들나무 오른쪽에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하얀돌로 지탱해 놓은 모습이 고양이가 한발을 뭔가에 올리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춘향관 내부에 있는 춘향이 옥중시
변사또가 고을의 유력 인사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이도령이 변사또 앞에서 지은 어사시]
정말 통쾌한 대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외우고 있을려구요
남의 신혼 첫날밤을 엿보는 음큼한 것들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요 ㅎ ㅎ ㅎ
타인이 고통받는 자리에서 잔치를 베풀고 있다 소설이지만 참으로 잔인한 사람들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다른 이유를 제외하더라도 좌시해서는 안되는 변사또입니다
여기는 완월정 위 넓은 광한루원이 한가로워 보입니다
완월정 연못아래 바위에 하트 모양이 보입니다. 여기에도 동전이 햐~~
동전에 돈이 들어가면 두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지나요 이런게 이용해서 사업 아이템 하나 생각해 봐야겠군요
완월정의 옆모습
완월정의 또다른 옆모습
450여살 넘게 먹은 팽나무 할아버지 아직도 건재하시네요
이 나무아래에서 나이 얘기하지 마세요
이제 광한루를 나가면서 마지막 최후의 한 컷을 날려봅니다
광한루 건너 요천
날씨가 풀리면 이곳에 오리배들이 돌아다니죠 지금은 물이 얼어서 잠정 휴업 중이군요
광한루 맞은편에 위치한 승월교는 사랑을 이어주는 다리라 하여 많은 연인들이 찾는 곳입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이 다리를 건너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일명 사랑의 다리라고도 하는데
이름에 걸맞게 다리 입구에 기념샷을 할 수 있는 하트가 있고 다리 위에도 하트모양의 틀이 있는데 특히 야경에 이쁩니다
남원은 추어탕과 미꾸라지 튀김이 유명하죠 요천주변은 일명 추어탕촌을 이루고 있는데 남원을 오신 분들은 반드시 한번씩 드셔야 할 음식입니다
승월교의 곡선과 아치형의 경사가 참 매력적입니다
기차 시간이 좀 남아 있어 산책을 하다보니 자전거 대여소가 있네요 1시간 만원인데 우리는 30분 5천원에 대여를 합니다
기차시간 땜에 어쩔 수 없다했지요
뒤로 보이는 승월교가 아름답습니다. 아경이라면 더욱 아름답겠죠
관광단지 안으로 들어가는 다리위 하트가 있네요 그리고 산봉우리에 정자도 보이고 시간만 허락된다면 함 갔다왔으면 좋겠는데
요천 자전거길 옆으로 하얏게 갈대잎들이 이쁘네요 마치 마라톤 대회 때 도로옆에 구경나와 박수치는 시민들 같지 않나요
매우 추운 날씨가 요천도 꽁꽁 얼었습니다
남원은 제가 12년전에 근무했던 곳이며 이곳 요천은 막 마라톤에 관심을 가지던 때로 이곳 요천에서 연습을 하곤 했죠
5km부터 출발해서 하프까지 전국을 돌아다니며 대회에도 참가해보자 했는데 전남 신안마라톤 5km 뛰고 부안마라톤 연습하다 다리를 다쳤고
그후 바로 은퇴?를 한 슬픈 과거가 있는 남원입니다 ㅜㅜ
요천에는 다리가 곳곳에 있는데 제일 멀게 돌면 거의 4km가 됩니다. 도는 곳은 자전거 길이어서 안전해서 운동하기에 딱 좋습니다
좀 힘들다 싶으면 중간중간에 있는 다리를 건너서 돌면 되구요 연습을 했던 곳은 위의 사진이 아니고 요천 바로 위에 있는 자전거 길입니다
사진은 없네요
요천이 꽁꽁 얼었지만 사람이 올라가서 스케이트를 탈 정도는 아닙니다
대여소에서 출발해서 왔다갔다 왕복하니 딱 30분이 소요 우리의 계획과 딱 들어 맞았어요 오케바리~~~~
남원광광단지내 백반도 맛있고 춘향이 세트장은 어떻게 바꿨는지 궁금도 하지만 아쉽게도 담으로 미뤄놓습니다
우리 딸 표정이 왜 여시 표정일까요 이유가 있었을테도 사진을 올린 날과 내용을 쓰는 날이 한달차가 나는 지라 생각이 안나는 군요
이제 대여시간 완료
승월교에서 내려다본 요천
승월교를 다녀왔으니 여기에서 한 컷을 빼 놓을 순 없겠죠
울 따님이 찍어준 부부사진
이제는 지나가는 분께 부탁하여 기록으로 남깁니다 우리 여기서 행복했노라고
광한루, 요천을 나와 이제 남원역으로 걸어갑니다. 가는 길에 여러가지 기념품 가게를 지나갑니다
남원은 제기(제사그릇)가 유명한데 요즘도 많이 팔리나 모르겠네요 제사를 안지내는 집도 많고 제기는 한번 사면 평생 쓰는지라
오늘은 남원 장날 금동시장을 일부러 지나갑니다 시장은 큰 마트가 없던 시절 엄마 손 잡고 여기저기 구경하던 참 설레이던 곳이었죠
당연히 먹자골목을 지나기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김말이와 고추튀김
뒤에 있는 주인 아저씨의 유머도 웃겼죠
"야 튀김없다 빨리 구워라"하고는 자기가 "예 다 구워갑니다"라고 큰 소리로 답하는 모습에 우리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금동 시장을 지나 남원역으로 가는 길 만복사지 터가 있습니다
남원에 근무할 때도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차타고 지나기만 했었죠
11세기 고려 문종(1046~1083)때 처음 만복사가 지어졌고 정유재란(1597년)에 소실되었다 지금은 일부의 석탑과 돌, 절터만 남았습니다
김시습의 소설 <금호신화>에 <만복사저포기>의 무대로 알려져 있죠
보시는 바와 같이 유물 몇점과 빈터만 덩그런히 남아 있습니다. 그 놈의 전쟁이 뭔지 ㅠ
만복사지석인상
만복사지 관람을 끝내고 우리는 이제 전주로 가기위해 남원역으로 걸어갑니다. 핸드폰 네비로 거리를 측정해보니 3.2km로 걸어가기 충분합니다
따님은 엄마, 아빠랑 걸어서 남원역까지 간다니 오히려 신이 났습니다 아이들의 명랑함을 보면 부모님 행복합니다
남원역 맞은 편에 벌거벗은 짝퉁 진안마이산이 있네요 ㅎ ㅎ
남원역 옆에 비치된 자전거 보관소
버스내리는 곳에서 남원역까지 비를 맞지 않도록 지붕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6시간의 여행은 막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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